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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유배지 청령포 한국사 자료-조선

단종(재위 1452∼1455)

조선 제6대 왕으로 재위 1452년∼1455년이다.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재위 3년 동안에도 수양대군의 권력에 휘둘렸던 어린 왕. 궁에서 쫓겨나 창덕궁에 머물 당시에도 단종은 묵묵히 지내기만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었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귀향가는 길에는 나졸들이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세조실록>에는 1457년 10월 21일 단종이 스스로 목매어서 자결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어떤 장소에 묘를 정했는지 등의 과정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에 비해 <병자록>, <전화적책>등의 사서에서는 단종이 살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차마 단종에게 내밀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단종을 보필하던 관원이 활시위로 목이 졸려 명을 달리했다고 전하고 있다.


단종의 유배지,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
춘원 이광수의 <단종애사>의 슬픈 역사의 주인공 단종. 강원도 영월에는 조선의 제6대왕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꽃도 채 피워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유배지 청령포가 있다. 청령포에서 비통한 시간을 보내다 꽃다운 나이 17세가 되던 해에 10월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숨졌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이 남아 단종의 슬픔을 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남아 있다.
청령포에서 자동차로 5분여 거리에 위치한 장릉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더욱 뜻 깊은 곳이다.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후한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시신을 거두기를 꺼렸지만, 당시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는 시신을 수습하여 영월 지산에 매장했다고 한다. 지금도 엄흥도가 엄나무가 되어 단종이 있던 서낭당을 지켜주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단종의 유배지 고른 신숙주>
http://baobabstar.egloos.com/10751130
<단종복위운동과 단종복위 참가자 복권 과정>
http://baobabstar.egloos.com/10752886
<금성대군에 대하여>
http://baobabstar.egloos.com/10756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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