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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즉위교서 속 분경금지법과 의정부의 권한 한국사 자료-조선

단종의 즉위교서 속 분경금지법과 의정부의 권한


1452년 몸이 약했던 문종이 병사한 후 12살의 어린 단종이 즉위하게 된다. 문종은 죽기 전 단종이 어려서 정사를 돌보는데 어려움이 많을 거라 생각하여 김종서, 황보인에게 단종을 잘 보필하도록 당부한다. 그렇게 때문에 단종 즉위 후 왕권에 의해서 나라가 운영이 된 것이 아니라 신권(의정부)에 의해서, 운영된다. 1452년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하고 즉위교서를 반포하게 된다. 단종이 반포한 교서의 항목 가운데서 의정부에 의한 간접정치에 관한 내용과 종친들의 정치참여를 막는 분경금지법이 들어 있었다. 단종이 즉위한 후 정치는 김종서와 황보인 등 의정부의 일부 재상들에 의해 좌우되었는데, 왕에게 올릴 문서가 있으면 의정부에서 미리 의결 노란 점을 쳐서 올릴도록 하였다. 그러면 왕은 그 노란 점을 보고 그에 따라 붓으로 낙점할 뿐이었는데, 이를 '황표정사'라고 불렀다. 이처럼 의정부의 권한은 매우 컸으며, 단종의 즉위교서 내용의 대부분도 의정부가 모든 일을 처리하겠다는 내용으로 종친인 수양대군의 불만을 과중시키는 일로 작용하게 이른다.


단종실록 1권, 즉위년(1452 임신 / 명 경태(景泰) 3년) 5월 18일(경술) 4번째기사
근정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반포하다


(전략...)

- 당상(堂上) 이상 관원과 대성(臺省) 정조(政曹)와 방어(防禦)에 긴하게 관계되는 연변(沿邊) 장수(將帥)와 수령의 제수는 모두 정부 정조(政曹)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시행하고 그 나머지 3품 이하의 제수도 또한 모두 살피어 박의(駁議)하라. 무릇 제수에 관하여서는 내가 사사로이 가까운 자들은 쓰지 않고, 모두 공론대로 하겠다. 만일 특지(特旨)로 제수할 자가 있으면
반드시 모든 정부 대신에게 의논하여 모두 가하다고 말한 연후에 제수하겠다.
- 대소 과죄(科罪)는 모두 정부에 내리어 의논한 연후에 내가 마땅히 친히 결단하겠고 감히 좌우의 사사로운 청으로 가볍게 하고 중하게 하지는 않겠다.
- 이미 이루어진 격례(格例)나, 가하다 부하다 할 것이 없는 일체의 항상 행할 수 있는 잡사(雜事)를 제외하고 그 나머지 공사는 모두 승지(承旨)로 하여금 면대하여 아뢰게 할 것이며, 그 중에서도 다시 상량(商量)하고 가부(可否)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정부 대신과 더불어 친히 의논하여 결정하겠다.

(중략...)

-군사[兵]를 맡은 대신의 집 군사는 진퇴시키지 못하고 한결같이 <육전(六典)>에 의할 것이며, 어기는 자는 헌사(憲司)가 규리(糾理)할 것.
- 이조(吏曹)·병조(兵曹)의 집정가(執政家)에 분경(奔競)57) 하는 것을 금하는 것은 이미 나타난 법령이 있지마는, 다만 서무(庶務)를 헤아려 의논하는 정부의 대신 및 귀근(貴近) 각처에서는 분경을 금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무뢰(無賴)·한잡(閑雜)의 무리들이 사사로이 서로 가서 뵈옵는 폐단이 진실로 다단(多端)하니, 이제부터 이후로는 한결같이 집정가들의 분경하는 예에 의하여 시행하고 공사로 인하여 진퇴하는 것과 출사하는 자는 이 한계에 두지 않을 것
-상례(常例)를 제외하고 무릇 특사할 일이 있으면 비록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정부에 의논한 뒤에 행할 것.
-대저 기교(奇巧)·완호(玩好)에 관계되는 물건은 진상하지 말고, 대소 신료가 식(式)에 의해 사은(謝恩)·하직(下直)·복명(復命)·문안(問安)하는 등의 일 외에 사사로운 일로 대궐에 나와 인연(因緣)으로 계달(啓達)하는 자는 반드시 유사에 붙이고 혹시라도 용서하지 말 것

(후략...)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 )에 대하여 

'분경’이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로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다툰다는 말이며, 벼슬을 얻기 위해 집정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들며 엽관운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조선 초기에 행정과 군정(軍政)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아가 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이 법이 제정되었다. 1399년(정종 1)에 일족 중 3·4촌내의 근친이나 각 절제사(節制使)의 대소군관(大小軍官)을 제외한 일체의 대소 관리가 서로 사사로이 윗사람을 만나 보는 것을 금하는 교지가 처음 내려지지만, 실제로는 시행되지 못하다가 태종이 즉위하면서 실시되었다. 이후 1470년(성종 1)에 분경의 금지 대상이 확정되어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총 319개의 법조문을 담고 있는데 이전, 호전, 예전, 형전, 병전, 공전의 6전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분경금지법은 6전 중 ‘형전’에 수록되어 있다. ‘형전’의 금제(禁制) 조항에는 ‘분경하는 자는 장 100, 유배 3000리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권세가문에 드나들면서 정치적 로비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종친의 측근을 비롯한 권력자 친인척들의 부정부패를 막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법전의 종류>
http://baobabstar.egloos.com/10751402
<단종과 유배지 청령포>
http://baobabstar.egloos.com/10748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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