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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의 역모사건에 대하여 한국사 자료-조선

남이의 역모사건에 대하여

남이의 옥은 남이의 역모사건이라고도 부르며,  예종 즉위년인 1468년에 남이 등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남이는 태종의 외손자이자, 권람의 사위이다. 일찍부터 무반의 기질을 나타내어 1457년(세조 3년) 17세로 무과에 장원급제한 뒤 세조의 신임을 받아 여러 무반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던 중, 1467년 이시애의 반란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의 칭호를 받고 의산군에 봉해졌다. 그런 다음, 건주위의 오랑캐를 토벌한 공로로 공조판서를 거쳐 27세의 어린 나리로 병조판서에 임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종이 즉위한 뒤 한명회, 신숙주 등은 노골적으로 남이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특히 강희맹, 한계희 등 훈구대신들이 남이가 병조판서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하자 예종은 그를 병조판서에서 해임하고 겸사복장으로 강등한다. 남이의 명성을 시기하던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적으로 몰린다. 궁궐에서 숙직하던 중 혜성이 나타나자 남이가 "혜성이 나타난 것은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 것을 펼칠 징조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병조참지 유자광이 듣고 곧바로 남이가 반역을 꾀하였다고 모함하였다.(예종실록 1권, 즉위년(1468 무자 / 명 성화(成化) 4년) 10월 24일(경술) 4번째기사 )
이 때 남이를 비롯하여 강순, 변영수, 조경치, 문효량 등 약 30명의 관련 인물들이 국문을 받고 거열형으로 처형됐으며, 그 가족들은 노비로 전락하였다.
이 옥사는 친조카인 단종을 죽이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세조의 순탄하지 못한 과정으로 인해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려다가 죽고, 어린 왕이 새로 즉위하는 등 정국은 아주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학계에서는 한명회, 신숙주 등의 원상세력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등장한 신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당시 남이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사림이 세력을 잡고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유자광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남이의 옥사 역시 유자광이 조작한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며, <연려실기술>과 같은 일부 야사에서는 남이를 젊은 나이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영웅적 인물로 묘사한다. 훗날, 순조 때 이르러 남이의 후손 남공철의 상소에 의해 신원이 복권되었다.

*거열형(車裂刑): 죄인의 두 팔, 다리 및 머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매달아 수레를 달리게 하여 신체를 찢는 형벌로 환형(轘刑)이라고 함 (흔히 능지처참과 혼동되기도 함)

<그림 속 남이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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