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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제도(4)-천민 한국사 자료-조선

조선시대 신분제도(4)-천민

천민







 



노비의 구분

공노비

왕실 소유의 내수사 소속, 중앙과 지방관아 소속으로, 사노비에 비하여 양호한 처지였다. 독립된 가옥에 살면서 국역 이외의 수입은 자기가 소유할 수 있었다. 공노비는 좁은 기회이기는 하나, ‘유외잡직이라는 특수한 벼슬도 할 수 있었다.

*70세 이상의 노비에게는 노인직이라는 명예직도 주기도 했다.

선상노비

대부분 장인으로서 일정 기간은 관청에 나가 무보수로 물품 제작하였음

납공노비

신공(身貢, 몸값)으로는 무명과 저화를 별도로 납부

사노비

입역노비(솔거노비), 납공노비(외거노비, 주로 사경지와 작개지 방식에 동원)
*사노비 매매 경우:  말 1필 정도의 값이었고, 젊고 건강할수록 비쌌다. 양인들도 노비를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비세습의 원칙






'천자수모법'의 적용으로 노비 간의 자식은 어머니의 소유주에 귀속되었으며,
법적으로 양천 결혼을 금지했으나, 실제로는 양반들의 노비증식책에 따라 행해졌다. 노비는 농업 인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였으며, 천민 중 대부분은 노비로, 노비는 비자유민으로 교육받거나 벼슬길에 나아갈 길이 막혀 있었다.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되었으므로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일 경우 그 자녀도 자연히 노비가 되는 제도가 일반적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자기 조상에 대해 제사도 지냈으며, 혼인과 재산소유 및 토지의 독립경영이 보장되어 있었다. 처자를 거느리고 독자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권은 인정받았으며, 주인이 자기의 노비라도 함부로 살해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자식이 없는 노비의 재산은 그 주인에게 귀속되며, 노비가 개간한 토지는 그 주인의 소유가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노비는 요역이나 군역의 의무는 없었지만, 그들은 자기의 주인에게 몸값으로 신공을 바칠 의무밖에 없었다. 단, 요역의 경우 솔거노비는 제외되지만 외거노비는 조선에 이르러 요역의 대상으로 파악되었다. 노비가 토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일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조세와 공물을 내야만 하였다. 드문 경우이지만, 노비 중에서 국가에 많은 재산을 바치고 그 자식을 양인으로 상승시킨 경우도 있었다.

 *구활노비(口活奴婢) : 조선시대에 평민을 노비로 삼는 것은 압량위천(壓良爲賤, 법을 어기고 청탁하여 양인을 천인으로 하는 것)이라 하여 법으로 금지하였으나,양반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죽어가는 평민을 구해 먹여 살려주는 경우 쌍방이 합의만 한다면 살려준 사람의 노비로 인정해주는 것으로서 국가에서 평민을 노비로 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한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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