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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사람들(3)-훈민정음 창제 학자 8명 한국사 자료-조선

세종의 사람들(3)-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8명의 학자

*집현전 직제학-정인지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최항
*부교리(副校理)-박팽년과 신숙주
*수찬(修撰)-성삼문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이개. 이선로

*설치 당시 직제의 품계: 영전사(領殿事, 정1품)·대제학(大提學, 정2품)·제학 (提學, 종2품) 각 2인, 부제학(副提學, 정3품)·직제학(直提學, 종3품)·직전(直殿, 정4품)·응교(應敎, 종4품)·교리(校理, 정5품)·부교리(副校理, 종5품)·수찬(修撰, 정6품)·부수찬(副修撰, 종6품)·박사(博士, 정7품)·저작(著作, 정8품)·정자(正字, 정9품)를 두었음

정인지(鄭麟趾) (1396 ~ 1478)
조선의 문신, 세종의 총애를 받아 예조와 이조의 정랑을 거쳐 집현전 학사로 등용되고 집현전 응교에 이어 집현전 직제학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거치며 승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였다.  조선 초기 대표적 학자의 한 사람으로 천문, 역법, 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고,  김종서 등과  함께 '고려사'를 찬수하고, 세종을 도와서 성삼문, 신숙자 등과 더불어 '훈민정음'의 창제에 공이 크다. 그는 예조 판서를 거쳐 1448년 이조 판서가 되어 삼남지방의 전품을 심사하여 토지의 등급을 정하기도 한다. 훗날, 계유정난에 수양대군을 도와 우의정에 승진하고  정난공신 1등으로 하동부원군 등 여러 공신에 봉해지게 된다. (호: 학역재(學易齋), 시호: 문성(文成) )

 

최 항(崔 沆) ( ? ~ 1474)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 부수찬이 되어 정인지, 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의 창제에 참여하는  세종때의 문신이다.  '동국정운' , '훈민정음해례' 등을 지어 세종에게 올렸다. 그는 우사간대부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지만,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정난공신 등 여러 공신에 봉해진다.


박팽년(朴彭年)(1417 ~ 1456)
집현전 학사로 여러 가지 편찬사업에 종사했고 경술(經術)과 문장·필법이 뛰어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성삼문과 함께 세종의 총애를 받은 학자였으나, 1456년 형조 참판으로서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김질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어 체포된다. 그의 재능을 아끼던 세조는 그를 회유 하지만 끝내 거절하고 사형을 당한다. (자: 인수(仁叟), 호: 취금헌(醉琴軒), 시호: 충정(忠正))

신숙주(申叔舟)(1417 ~ 1475)
조선의 문신으로,  1443년 통신사 변효문의 서장관이 되어 일본에 가서 시명을 떨친다. 또한,  귀국하던 중 쓰시마섬에서 계해약조를 체결한다. 여기서 계해약조란, 1443년 조선과 일본 간에 맺은 무역 조약을 말한다. 신숙주는 그 후 집현전의 수찬을 지내면서 세종을 도와 성삼문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다.  세종에게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소장 학자였였지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가담하여 여러 직책을 맡는다. (자: 범옹(泛翁), 호: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


성삼문(成三問)(1418 ~ 1456)
집현전 학사로서 정음청에서 학자들과 함께 한글의 창제를 앞두고 신숙주와 함께 명나라의 한림 학사 황찬에게 13번이나 내왕하며 음운을 질의하고, 다시 명나라에 여러번 건너가 음운과 교장 제도를 연구할 만큼  훈민정음 창제에 심혈을 기울인 학자이다. 다른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나, 단종복위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인해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친국을 받게 된다. 결국, 군기감 앞에서 거열형을 받는다. (자: 근보(謹甫), 호: 매죽헌(梅竹軒), 시호: 충문(忠文))

*거열형: 수레에 팔, 다리와 목을 매달아 찢어 죽이는 형벌

강희안(姜希顔) (1417 ~ 1464)
시, 서, 화에 모두 능하여 안견, 최경과 함께 삼정이라 일컬어졌고, 정인지 등과 함께 세종이 지은 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으며, '용비어천가'의 주석을 붙일 때도 참여한 세종 때의 문신이다. 1447년 이조정랑이 되어 최항, 성삼문, 이개 등 집현전 학자들과 <동국정운> 편찬에 참여하였다. 문집에 원예에 관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이 있다. 그림으로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강호한거도(江湖閑居圖)> 등이 있다. (자: 경우(景遇), 호: 인재(仁齋))


이 개 (李 塏)(1417 ~ 1456)
1441년 저작랑으로 <명황계감> 편찬에 참여할 만큼 시문이 청절하고 글씨를 잘 썼으며, 훈민정음의 창제에도 참여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죽게 된다. 원래는 세조와도 친교가 있었기 때문에 진상을 밝히도록 강요 받게 되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처형당한다.

이선로(李善老)(?~?)
집현전 부수찬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으며, 예조좌랑을 지냈기도 했다. 그는 지리학에 능통하여
함길양도 경차관의 직함으로 박정이 발견했다는 신천지를 찾아나섰지만, 거짓보고임을 알고 세종에게 박정의 말이 거짓임을 고하였다. 세종은 허위 보고한 박정은 국가기망의 대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부승지 박이창의 의견에 따라 변조에서 처리라고 넘겼다. 이선로 개천(現 청계천)에 더러운 물건을 투입하는 것을 금하여 명당(明堂)의 물을 맑히기를 세종에게 청하기도 하지만, 집현전 교리 어효첨은 세종에게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만으로 개천의 물이 맑아질 수는 없고 그 일은 백성을 동원해여 하므로 민생을 괴롭힐 수 없다고 하여 세종이 어효첨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기도 한 일화가 있다.

<집현전에 대해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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