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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삼국사기-신라본기


선덕왕
 

선덕왕이 왕위에 오르니,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명민하였다. 진평왕이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위에 올려 세우고 '성조황고'라는 칭호를 올렸다.

전왕 때에 당에서 가져 온 모란꽃 그림과 그 꽃씨를 덕만에게 보였더니, 덕만이 말하였다. "이 꽃은 비록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왕이 웃으며 묻기를,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라고 하니, 덕만이 대답하였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그런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무릇 여자가 아름다우면 남성들이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까닭에서입니다. 이 꽃이 빼어나게 아름다운데도 그것을 그린 위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 꽃씨를 심었더니 과연 말 그대로였다. 그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이와 같았다.

원년 2월에 대신 을제에게 국정을 총괄하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사신을 보내 나라 안의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와 제 힘으로 살 수 없는 이들을 위문하고 구휼하였다. 12월에 사신을 당에 들여보내 조공하였다.

2년 봄 정월에 왕이 친히 신궁에 제사를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으며, 1년 동안 여러 주와 군의 납세를 면제해주었다. 8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3년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으로 고쳤다. 분황사가 낙성되었다. 3월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밤알만하였다.

5년 봄 정월에 이찬 수품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3월에 왕이 병에 걸렸는데 의술과 기도가 모두 효험이 없자, 황룡사에 백고좌를 베풀어 승려들을 모아 인왕경을 갈설하게 하였으며, 1백 명의 승려에게 도첩을 주었다.

여름 5월에 두꺼지바 옥문지에 크게 모여들었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의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두꺼비의 성난 눈은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서남쪽 국경 지대에 땅 이름을 옥문곡이라 하는 곳이 있다고 들었으니, 생각건대 혹시 이웃 나라 군사가 몰래 그 가운데 잠입한 것이 아닐까?" 하고, 곧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명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수색하게 하였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갑사 5백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알천이 이를 엄습해 모두 죽였다.

7년 봄 3월에 칠중선 남쪽의 큰 돌이 저절로 35보를 옮겨 갔다. 가을 9월에 노란 꽃비가 내렸다. 겨울 10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겅의 칠중성을 침공하니, 백성들이 놀라고 동요해 산록짜기로 들어갔다. 왕이 대장군 알천에게 명해 그들을 안정시키고 모이게 하였다. 11월에 알천이 고구려 군사와 칠중성 밖에서 싸워 이겨 죽이고 사로잡은 이들이 매우 많았다.

8년 봄 2월에 하슬주를 북소경으로 만들고, 사찬 진주를 시켜 지키게 하였다. 가을 7월에 동해의 물이 붉어지고 뜨거워져서 물고기들이 죽었다.

9년 여름 5월에 왕이 자제들을 당에 보내 국학에 들이기를 청하였다. 이에 고구려, 백제, 고창, 토번에서도 자제들을 보내 입학시켰다.

11년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나라 서쪽의 40여 성을 빼앗아 당으로 가는 길을 끊으려 하니, 왕이 당 태종에게 사신을 보내 위급한 사정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을 쳐서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과 사지 죽죽, 용석 등이 이 싸움에서 죽었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성 싸움의 보복을 하고자 하여, 곧 이찬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군사를 요청하였다. 처음 대야성에서 패했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가 그곳에서 죽었는데, 이가 바로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소식을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온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았으며 사람이나 물건이 앞에 지나가도 개닫지 못하더니, 이윽고 말하기를 "아!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집어삼키지 못하겠는냐!" 하고, 즉시 왕에게 나아가 "제가 사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군사를 청해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고구려 왕 고장은 평소에 춘추의 이름을 들었는데, 군사의 호위를 엄히 한 다음 그를 만났다. 춘추가 의견을 아뢰었다. "지금 백제가 무도하여 긴 뱀과 큰 돼지처럼 잔인하고 탐욕스럽게 우리 영토를 침범하므로, 우리 임금께서 귀국의 군사를 얻어 그 치욕을 씻고자 하여 이렇게 저를 보내 대왕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구려 왕이 말하였다. "죽령은 몬래 우리 땅이니 네가 만약 죽령 서북쪽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줄 수 있다." 춘추가 대답하였다. "제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빌리고자 하는 터에, 대왕께서는 환란을 구원해 이웃 나라와 잘 지낼 생각은 않고 단지 사신을 위협하고 겁박하여 땅을 되돌려줄 것만을 요구하시니, 저는 죽음이 있을지언정 그 밖의 것은 모르겠습니다." 고장은 그의 말이 불손한 데 노하여 그를 별관에 가두었다. 춘추는 몰래 사람을 시켜 본국 왕에게 알렸다. 왕이 대장군 김유신에게 명해 결사대 1만 명을 거느리고 달려가게 하였다. 유신이 군사를 몰아 한간을 건너 고구려 남쪽 국경에 들어서자, 구구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춘추를 풀어 돌려보냈다. 왕이 유신을 압량주 군주로 임명하였다.

12년 가을 9월에 사신을 당에 보내 아뢰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우리 나라를 침범하고 능멸하여 여러 차레 공격을 받은 것이 수십 성입니다. 저들 두 나라는 군사를 연합해 기필코 빼앗으려 하여 이번 9월에 장차 군사를 크게 일으키려 하니, 우리 나라의 사직이 필시 온전할 수 없을 듯합니다. 삼가 저의 신하를 보내 대국에 운명을 맡기니, 원컨대 일부 군사를 빌려 구원해주시기 바랍니다."

태종이 사신에게 말하였다. "나는 실로 너희가 두 나라의 침구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자주 사신을 보내 너희 세 나라가 화친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는 사신이 발길을 돌리자마자 뉘우치던 것을 뒤집어버리니, 이는 생각이 너희 나라를 집어삼켜 없애고 그 땅을 갈라 차지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너희 나라에서는 무슨 기묘한 꾀를 마련해 그들이 막무가내로 날뛰는 것을 모면하려 하는가?" 사신이 말하였다. "우리 왕께서는 일이 막다른 곳에 이르고 계책이 다해 오직 위급한 사정을 대국에 알려 나라의 보전을 바랄 따름입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내가 변방의 군사를 조금 내고 거란과 말갈을 함쳐 곧바로 요동으로 들어가면, 너희 나라는 저절로 풀려나 1년 동안은 포위 상태를 누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이어지는 군사가 없는 것을 알면 도리어 침략과 모욕을 함부로 하여 네 나라가 다 같이 소란스러워질 것이니, 너희도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첫째 대책이 될 것이다. 나는 또 너희에게 수천 개의 붉은 옷과 붉은 기을 줄 수 있으니, 두 나라 군사가 이르렀을 때 그것들을 세워 벌여두면 저들이 보고 우리 나라 군사인 줄로 알아 반드시 모두 달아날 것이다. 이것이 둘째 대책이 될 것이다. 백제는 바다의 험함을 믿고서 전투 병기를 정비하지 않고, 남녀가 어지러이 뒤섞여 서로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수십 수백 척의 배에 무장한 군사를 실어 소리없이 바다에 떠 곧바로 그 땅을 습격할 것이다. 또 너희 나라는 부인을 임금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웃 나라들이 업신여기며 임금의 근본을 잃고 도적을 불러들여 평안할 날이 없는 것이니, 내가 종친 한 사람을 보내 너희 나라 임금으로 임명하겠다. 그러나 그 자신 홀로 왕노릇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 맡아 호위하다가 너희 나라가 안정되기를 기다려 너희에게 맡겨 스스로 지키게 할 것인 바, 이것이 셋째 대책이 될 것이다. 너는 잘 생각하라. 장차 어느 대책을 따르겠는가?" 사신은 다만 "예"라고 할 뿐 대답이 없었다. 태종은 그가 용렬하고 무능하여 군사를 빌리고 위급함을 호소할 인재가 못되는 것을 한탄하였다.

13년 봄 정월에 사신을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태종이 사농승 상리현장을 보내 문서를 지니고 와 고구려에 주게 하고, 이어 말하였다. "신라는 운명을 우리 나라에 맡기고 조공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너희는 백제와 함께 마땅히 곧 군사를 거둘 일이다. 만약 다시 신라를 친다면 내년에는 의당 군사를 내서 너희 나라를 칠 것이다." 개소문이 현장에게 말하였다. "고구려와 신라는 원수가 되어 틈이 벌어진 지 이미 오래이다. 지난 날 수가 침략했을 대 신라가 그 틈을 타고 고구려의 5백 리 땅을 탈취해 성읍을 모두 차지하였다. 그 땅과 성들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아마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현장은 "이미 지나간 일을 어찌 다시 추궁해 이야기할 것인가?"라고 했으나, 소문은 끝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가을 9월에 왕이 유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여 크게 이기고 일곱 성을 빼앗았다.

14년 봄 정월에 사신을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유신이 백제를 정벌하고 돌아와서 아직 왕을 뵙지도 않았는데, 백제의 대군이 다시 변경을 침구하였다. 왕이 유신에게 출정을 명하니 유신은 마침내 집에도 가지 않고 나가 쳐부수고 2천 명의 목을 베었다. 유신이 □□□ 돌아와 왕에게 복명하고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터에 또 백제가 다시 와서 침범한다는 급보가 이르렀다. 왕은 사태가 위급하므로 말하였다. "나라가 보존되고 멸망하는 것이 공의 한 몸에 매였으니, 수고로움을 꺼리지 말고 가서 대책을 꾀하기 바란다." 유신이 또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밤낮으로 군사를 훈련해 서쪽으로 행군하는데, 길이 자기 집 문 앞으로 지나게 되었다. 온 집안의 남녀가 우러러보면서 울었으나, 공은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3월에 황룡사탑을 처음으로 세우니 이는 자장의 요청을 따른 것이다.

여름 5월에 태종이 친히 고구려를 침략하자 왕은 군사 3만 명을 내어 이를 도왔다. 백제가 이 빈 틈을 타고 나라의 서쪽 일곱 성을 습격해 탈취하였다.

16년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반역을 꾀하고 군사를 일으켰다가 성공하지 못하였다.

8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선덕이라 하고, 낭산에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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