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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전 삼국사기-신라본기


김유신전


김유신은 왕경 사람이다. 그이 12대 할아버지는 수로인데, 어떤 사람인지는 알수 없지만, 후한 건무 18년 임인에 이르러 나라를 열고 '가야'라 했다가, 후에 나라 이름을 '금관국'으로 고쳤다. 그이 자손이 대를 이어 수로의 9세손인 구해에 이르렀는데, 그는 혹은 구차휴라도고 하며, 유신에게는 증조부가 된다.

유신의 조부 무력은 신주도 행군총관이 되어 일찍이 군대를 거느리고 백제의 왕과 그 장수 4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을 목벤 바 있다. 유신의 아버지 서현은 관등과 관직이 소판과 대량주 도독에 이르렀다.

처음에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눈짓으로 꾀어서 중매를 기다리지도 않고 야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장차 함께 떠나려 하자, 숙흘종은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노하여 딸을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홀연히 별채의 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는 이들이 놀라 흩어지자, 만명은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와 마침내 서현과 더불어 만노군으로 달아났다.

서현이 경진일 밤에 꿈을 꾸었는데, 형혹성과 진성 두 별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이었다. 만명 역시 신축일 밤 꿈속에서 금빛 갑옷을 입은 동자가 구름을 타고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임신을 하여 20개월 만에 유신을 낳았으니, 이때가 바로 진평왕 건복 12년이다.

유신이 15세에 화랑이 되자 당시 사람들이 기꺼이 복종하니, 그 무리를 용화향도라고 하였다.

진평왕 건복 28년 신미에 유신의 나이 17세였는데, 고구려와 백제와 말갈이 나라의 강토를 침범하는 것을 보고, 의분이 북받쳐 적도들을 평정할 뜻을 가지고 홀로 중악의 석굴에 들어가 재계하고 하늘에 고해 맹세하였다. "적국들이 도의가 없이 승냥이와 호랑이가 되어 우리 강토를 어지럽히니 평안한 날이 없습니다. 저는 일개 미천한 신하로서 재주와 힘은 보잘것없으나 나라의 환란을 없애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바라건대 하늘을 굽어 살피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나흘 후 홀연히 한 노인이 거친 베옷을 입고 나타나서 물었다. "이곳은 독충과 맹수가 들끓어 두려운 곳인데, 귀한 소년이 이 외진 곳에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

"어르신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어르신의 존함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처없이 인연에 따라 오고 가며, 이름은 난승이라고 한다."

유신은 그 말을 듣고 범상치 않은 사람인 줄을 알고, 다시 절하고 나아가 아뢰었다. "저는 신라 사람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근심으로 가득 차서, 이곳에 와 무슨 계제를 만날 것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어르신께서는 저의 정성을 가엾게 여기시어 벙술을 일러주소서."

노인은 잠자코 말이 없었다. 유신은 눈물을 흘리며 부지런히 간청하기를 예닐곱 번이나 하였다. 그제야 노인은 말문을 열었다.

"그대는 아직 어린데도 삼국을 아우를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장하다 하지 않으랴!"

이윽고 비법을 주면서 다시 말하였다.

"삼가 함부로 전하지 말라. 만약 의롭지 못한 데에 쓴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을 것이다."

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 떠나 2리쯤 멀어지니, 유신이 쫓아가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고 오직 산 위에 오색빛만 찬연하였다.

건복 29년에 이웃의 적국들이 한층 더 핍밥해 오자 유신은 장렬한 마음이 더욱 격동하여 홀로 버검을 차고 인박산 골짜기에 들어갔다. 향을 사르고 하늘에 고하열 빌기를 마치 중악에서 맹세했던 것처럼 하고, 어울러 "천관께서는 빛을 드리워 보검에 영험함을 내려주소서!"라고 기도하였다. 3일째 밤에 허성과 각성의 빛무리가 밝게 아래로 드리워지더니, 보검이 마치 움직이는 것 같았다.

건복 46년 기축 가을 8월에 왕이 이찬 임말리와 파진찬 용춘과 백룡, 그리고 소판 대인과 서현 등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고구려인들이 군대를 내어 맞아 쳐오니 우리 측이 불리해 전사자가 매우 많아졌으며, 무리의 사기가 크게 꺾여 더 이상 싸우려는 마음을 갖지 못하였다. 유신은 이때 중당의 당주였는데, 어버지 서현 장군 앞에 나아가 투구를 벗고 고하였다.

"우리 군이 패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스스로 마음 속에 충과 효를 기약해 왔던 바, 전투에 임해 용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들으니 '옷깃을 들면 옷이 바로 되고 그물의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 했으니, 제가 바로 그 옷깃과 벼리가 되고자 합니다."

이내 곧 말에 올라 검을 뽑아 들고 참호를 뛰어나가 적진에 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베어 들고 왔다. 우리 군대가 그 모습을 보고 승세를 타고 분연히 공격해, 5천여 명을 베어 죽이고 1천 명을 사로잡으니, 낭비성 안에서는 크게 두려워해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모두 나와 항복하였다.

선덕대왕 11년 임인에 백제가 대량주를 무너뜨렸을 때,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이 남편 김품석을 따라 죽게 되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의 군대를 청해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고구려로 출발할 즈음 춘추는 유신에게 말하였다.

"내가 공과 더불어 한 몸으로 나라의 중신이 되어 있는 바, 이제 내가 만약 고구려에 들어가서 해를 입는다면 공께서는 무심할 것입니까?"

"공께서 만약 가신 뒤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제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의 왕정을 짓밟을 것입니다. 진정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장차 무슨 낯으로 나라 사람들을 보겠습니까?"

춘추는 감복하고 흡족하여 유신과 함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머금고 맹세하였다.

"내가 일정을 헤아려 보니 60일이면 돌아올 것입니다. 만일 60일을 넘기고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겠습니다."

마침내 서로 헤어진 뒤, 유신은 압량주 군주가 되었고, 춘추는 훈신 사간과 함께 고구려에 교빙길을 떠났다. 일행이 대매현에 이르렀을 때 대매현 사람 두사지 사간이 푸른 베 3백 보를 춘추에게 선물하였다. 이윽고 고구려의 경계에 들어서자 고구려 왕은 태대대로 개금을 보내 춘추 일행을 맞이해 접대하게 했으며 연회를 융숭히 베풀었는데, 마침 어떤 이가 고구려 왕에게 고하여 아뢰었다.

"신라의 사신은 범용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그가 온 것은 아마 우리의 형세를 살피고자 함일 것입니다. 왕께서는 그 점을 헤아리셔서 후환이 없게 하소서."

그러자 고구려 왕은 이치에 어긋난 질문을하여 춘추가 대답하기 난처해하는 것을 빌미로 욕보이려 하였다.

"마목현과 죽령은 본디 우리 나라 땅이니, 만약 우리에게 반환하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국가의 토지란 신하된 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니, 신은 감히 명령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고구려 왕은 노하여 춘추를 가두고, 이에 죽이려 했으나 미처 죽이지는 않은 채로 두었다. 춘추는 푸른 베 3백 보를 고구려 왕이 총애하는 신하인 선도해에게 은밀히 선물하였다. 선도해는 음식을 갖추어 와서 서로 마시다가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농담하듯이 말하였다.

"당신은 일찍이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들었는데, 의원 말이 '토끼의 간으로 약을 지으면 치료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 가운데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바가 없었습니다. 이때 한 거북이 용왕에게 아뢰기를 '제가 구해 올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육지에 올라 토끼를 만나자,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는데 맑은 샘과 깨끗한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좋은 과일이 있으며 추위와 더위가 이르지 못하고 사나운 매들도 침범하지 못한다. 네가 만약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편안하게 살면서 근심이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거북은 토끼를 등 위에 태우고 2, 3리쯤 헤엄쳐가다가 고개를 돌려 토끼에게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모름지기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 하기에,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토끼는 '아뿔싸! 나는 신명의 후예여서 오장을 꺼내 씻어 넣을 수 있으니, 지난번 마음에 약간 번거로움이 있는 듯하여 간과 심장을 꺼내 씻어서 잠깐 바위 아래 두었다.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서둘러 오느라 간이 아직 그곳에 있으니, 어찌 되돌아가 간을 가져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너는 얻는 바를 구할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비록 간이 없다 하더라도 문제없이 살 수 있으니, 어찌 서로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거북이 그 말을 믿고 되돌아가서 막 해안에 오르자마자 토끼는 거북으로부터 벗어나 수풀에 들어가더니, '너야말로 어리석구나! 어찌 간 없이 살 수 있는 이가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거북은 민망해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 합니다."

춘추가 그 이야기를 듣고 선도해의 의중을 깨달아 고구려 왕에게 글을 보내 제의하였다.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대국의 땅이니, 신이 귀국하게 되면 우리 왕께 청해 반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거든 저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고구려 왕은 기뻐하였다.

춘추가 고구려에 들어간 지 60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유신은 나라 안의 용사 3천 명을 가려 뽑아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나라의 어려움에 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 한다. 대저 한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면 백 명을 당할 수 있고, 백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면 천 명을 당할 수 있으며, 천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면 만 명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니 천하에 거리끼는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 나라의 어진 재상이 다른 나라에 붙잡혀 있거늘, 어찌 두렵다 하여 어려움을 피하겠는가!"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곳으로 간다 한들, 감히 장군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왕에게 청해 떠날 날짜를 정하였다. 이때 고구려의 첩자인 승려 덕창이 사람을 시켜 고구려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고구려 왕은 이전에 춘추가 맹세하는 말을 들은 바 있고, 게다가 첩자의 보고까지 받으니 감히 더 이상 춘추를 억류하지 못하고 두터운 예를 베풀어 돌려보냈다. 춘추는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게 되자 호송하던 이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백제에 분풀이를 하고자하여 군대를 청하려 왔는데, 대왕은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땅을 요구하는 바,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번 대왕에게 글을 드리 건은 죽음을 모면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있다가 선덕왕 13년에 소판이 되었다. 그해 가을 9월 왕이 유신을 상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백제의 가혜성, 성열성, 동화성 등 일곱 성을 정벌하게하여 크게 이겼으며, 이를 연유로 가혜의 나루를 개통하였다.

을사년 정월에 전장에서 돌아와 아직 왕을 알현하지도 못했는데, 국경을 지키는 관리로부터 백제의 대군이 쳐들어와 우리의 매리포성을 공격한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왕이 다시 유신을 상주 장군으로 삼아 백제군을 막게 하였다. 유신은 왕명을 받자 곧 말에 올라 처자식도 만나보지 않고 백제의 군사를 막아쳐서 쫓았으며, 머리를 벤 것이 2천 명이었다. 3월에 유신이 돌아와 왕궁에서 복명하고 미처 집에 돌아가지도 못했는데, 또다시 백제 군대가 그 국경 지대에 출동해 주둔하면서 바야흐로 크게 우리를 쳐들어오려 한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왕은 다시 유신에게 일러 말하였다.

"공은 수고루음을 꺼리지 말고 빨리 가서, 그들이 이르기 전에 대비하기를 바란다."

유신은 또자시 접에 들르지도 않은 채, 군사를 조련하고 무기를 수선하여 서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때 유신의 집안 사람들이 모두 문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유신이 문 앞을 지나치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가다가, 50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말을 멈추더니, 집에서 마실 물을 거져오라하여 마시고 말하였다. "우리 집 물은 여전히 옛날 맛 그대로구나!"

그러자 군사들이 모두 말하였다. "대장군께서도 오히려 이와 같으신데, 우리들이 어찌 골유과 이별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겠는가!"

유신이 국경에 이르자 백제인들은 우리 군사의 방위 태세를 보고 감히 핍박해 들어오지 못하고 물러갔다. 대왕이 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고, 유신에게 관작과 상을 더해주었다.

선덕왕 16년 정미는 선덕왕 치세 말년이요,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과 염종이 '여왕이 잘 디스리지 못한다'는 구실로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위하고자 하였다. 왕은 궁성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 안에 주둔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 군영을 차려, 10일 동안 공방을 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깊은 밤 자정 무렵에 큰 별 하나가 월성에 떨어지자, 비담 등이 사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별이 떨어지 아래에는 반드시 유혈이 있다 한다. 이는 아마 여왕이 패망할 조짐일 것이다."

그러자 사졸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대왕이 그 소리를 듣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자 유신이 왕을 뵙고 아뢰었다. "길함과 흉함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바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주왕은 봉황이 나타났음에도 망하였고, 노나라는 기린을 잡은 뒤에 쇠망했으며, 은나라 고종은 꿩이 울었음에도 흥하였고, 정나라는 용들이 서로 싸웠음에도 창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이 요망함을 이기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별자리의 변괴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못됩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이윽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견서 연에 실려 날려보내니,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였다. 다음날 사람을 시켜 거리에서 소문을 내기를 '지난 밤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하여, 적군들로 의구심을 품게 하였다. 그리고 흰 말을 잡아 별이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축문을 지어 축원하였다."

"하늘의 도리로 말하자면 양은 굳세고 음은 유약하며, 사람의 도리로 말하자면 임금은 존귀하고 신하는 비천하니, 진실로 이것이 뒤바뀐다면 크나큰 혼란일 것입니다. 지금 비담 등은 신하로서 임금을 모해하며 아랫사람으로서 웃사람을 침범하고 있으니, 이것은 이른바 난신적자라 사람과 신이 함께 미워할 바요,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바이거늘, 이제 하늘이 마치 여기에 아무런 의지가 없는 듯하여 도리어 별의 괴변을 왕성에 나타내 보이시니, 이야말로 신이 의혹을 가져 깨닫지 못할 일입니다. 바라건대 하늘의 위엄으로써 사람의 행동거지에 따라 착한 이에게 좋게 대하고 악한 이를 미원하시어, 신명의 부끄러움을 짓지 마소서."

이윽고 여러 장군과 병졸을 독려해 떨쳐 공격하니 비담 등이 패해 달아났다. 그들을 추격해 목베고 일족을 모조리 죽였다.

겨울 10월에 백제군이 와서 무산, 감물, 동잠 등 세 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통솔해 막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군대가 고전하여 사기가 다하자, 유신은 비령자를 불러 말하였다.

"오늘의 사태가 위급하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격려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비령자가 절하여 말하였다. "어찌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비령자가 적진에 달려가니, 그의 아들 거진과 그 집 종 합절이 그를 따라 적들의 칼과 창을 향해 돌진해 힘껏 싸우다 모두 죽었다. 군사들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감격해 힘써 앞을 다투어 나가 적굼을 크게 깨뜨리고 3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진덕왕 태화 원년 무신에 춘추느 앞서 고구려에 대한 청병이 실패했기 때문에 마침내 당에 들어가 군대를 청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 태종이 물었다. "내가 너희 나라 유신의 명성을 들었는데 그 사람됨이 어떠하냐?"

"유신이 비록 약간 재주와 지혜가 있다고는 하나 황제의 위엄을 빌리지 않고서야 어찌 쉽게 이웃 나라로부터의 환란을 없애겠습니까?"

"진정코 군자의 나라이다!"

이내 조칙을 내려 원병 파견을 허락하고, 장군 소정방에게 20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백제를 정벌하게 하였다. 이때 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있으면서 마치 군사 일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기며 여러 달을 지냈다. 압량주 사람들은 유신을 용렬한 장수라고 여겨 야유하고 비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지낸 날이 오래이니 힘에 여유가 있어 한 번 싸워볼 만한데도, 장군이 저토록 게을러빠졌으니 어찌할 것인가?"

유신이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이 쓸 만한 것을 알고서 대왕에게 아뢰었다. "민심을 살펴보니 이제 일을 벌일 만합니다. 청컨대 백제를 쳐서 지난 번 대량주 전투를 설욕하고자 합니다."

"이는 적은 군사로 대군을 저촉하는 것이니, 그 위험함을 장차 어찌하려는가?"

"전쟁의 승부는 군대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인심이 어떠한가에 따라 좌우될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주왕은 억조 창생을 가지고서도 그들의 마음과 덕이 제각기 달랐기 때문에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친 주나라의 어진 열 명의 신하들만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저희는 한 마음으로 죽음과 삶을 같이할 수 있으니, 저 백제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제서야 왕이 허락하였다. 유신은 마침내 압량주의 군사를 뽑아 단련시켜서 적에게로 나아갔다. 대량성 밖에 이르자 백제군이 막아 저항하였다.우리 군을 짐짓 패해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달아나 옥문곡에 이르렀다. 백제군이 가벼이 여겨 대거 병사를 동원해서 추격해오자, 유신은 복병을 내보내 그 앞뒤를 공격해 크게 깨뜨리고 백제 장군 여덟 명을 사로잡았으며, 죽이고 잡은 사졸의 수가 1천 명에 달하였다. 이윽고 사람을 시켜 백제 장군에게 제의하였다. "우리 나라 군주였던 품석과 그 부인 김씨의 유해가 너희 나라 옥중에 묻혀 있고, 지금 너희 비장 여덟 사람이 나에게 잡혀 땅바닥을 기면서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나는 여우나 표범도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제 살던 언덕으로 향하는 뜻을 생각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너희가 죽은 두 사람의 유골을 보내서 살이 있는 여덟 명의 목숨과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러자 백제의 중상 좌평이 백제 왕에게 아뢰었다. "신라인들의 해골을 가지고 있어봐야 이로울 게 없으니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저들이 약속을 어기고 우리 측 여덟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잘못은 저들에게 있고 옳음은 우리게게 있으니 무슨 근심할 게 있겠습니까?"

이윽고 품석 부부의 유골을 파내 나무 함에 넣어 보내오니, 유신이 말하였다.

"낙엽이 한 잎 진다한들 무성한 숲에 덜어지는 바가 없으며, 티끌 하나 더한다 한들 태산에 보태질 바도 없다."

곧 여덟 사람을 살려 보냈다. 그르고 승리의 기세를 타 백제 땅에 들어가 악성 등 열두 성을 함락히키고 2만여 명의 목을 베었으며 9천 명을 사로잡았다. 조정에서 그의 공로를 논의해 품계를 이찬으로 올려주고 상주행군 대총관으로 삼았다. 그 뒤 유신은 다시 적의 땅에 들어가서 진례성 등 아홉 성을 도륙하고 9천여 명의 목을 베었으며 6백 명을 사로잡았다. 당에 들어갔던 춘추가 군대 20만을 얻어 돌아와서 유신을 만나 서로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이 천명에 달려 있으니 살아 돌아와 다시 공과 만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제가 나라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두 번 백제와 크게 싸워 20개 성을 빼앗고 3만여 명을 목베거나 사로잡았으며, 또 품석 공과 그 부인의 유골을 고향에 되돌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하늘이 도우셔서 이룬 것이지 저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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