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밥나무가 있는 별 하나...

baobabstar.egloos.com

포토로그



제1대 태조의 가계도 왕의 가계도-조선

제1대 태조, 이성계의 가계도



태조, 이성계에 대하여
조선 제1대 왕으로, 재위 1392∼1398년이다. 이름은 성계(成桂)이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했다.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다. 그의 선조 이안사 때부터 원나라 지방관으로 벼슬직을 하기 시작했고, 아버지 이자춘도 원나라의 총관부가 있던 쌍성의 천호로 있었다. 1356년(공민왕 5) 고려의 쌍성총관부 공격 당시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면서 고려의 벼슬을 받았다.이로써 이자춘은 1361년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兵馬使)로 임명되어 동북면 지방의 실력자가 되었다. 이러한 가문의 배경을 토대로 이성계 역시 크게 활약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361년 10월에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만호(禿魯江萬戶) 박의를 잡아 죽인 등 여러 큰 전공을 세우면서 다양한 벼슬직을 거쳤다. 1388년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문제로 두 나라의 외교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는데, 조정에서 요동정벌이 결정되었는데, 이때 이성계는 우군도통사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한 후 창왕을 옹립했다. 이듬 해 다시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뒤 수문하시중이 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전국의 병권을 장악했으며, 곧이어 영삼사사가 되었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朝鮮)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결국 1392년 7월 공양왕을 원주로 내쫓고, 새 왕조의 태조로서 왕위에 올랐으며, 명나라에 대해 사대정책을 쓰면서, 명나라의 양해 아래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확정했다. 무학대사의 의견에 따라 한양(漢陽)을 새 서울로 삼기로 결정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과에게 선위한 뒤 상왕(上王)이 되고, 이후 2년 뒤인 1400년 이방원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넷째 형 방간마저 물리친 후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조선의 3번째 왕이 되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경도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방원은 이성계를 데려오기 위해 매번 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마저 모조리 죽여서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나온 말이 바로 '함흥차사'이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서 태상왕의 자리에 있다가 74세의 나이로 창덕궁에서 사망하였다.
 
*용비어천가  http://baobabstar.egloos.com/10983449
*정도전 신도가 : http://baobabstar.egloos.com/10805212
*1차 왕자의 난 http://baobabstar.egloos.com/10786952
*2차 왕자의 난 http://baobabstar.egloos.com/10786965
*제3대 태종의 가계도 http://baobabstar.egloos.com/10782525
*제2대 정종의 가계도 http://baobabstar.egloos.com/10943096
*조선 전기 대외관계에 대하여 http://baobabstar.egloos.com/10790331







mouse bl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