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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허준에 대하여 한국사 자료-조선

허준(許浚, 1539 ~ 1615)에 대하여


조선 중기의 의관(醫官)으로,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냈다. 허준은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지만 차별받지 않고 큰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허준의 할아버지 허곤(許琨)은 무관 출신으로 경상우수사를 지낸 인물이며, 아버지 허론(許碖) 역시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 허론의 정실은 일직 손씨였으며 허준의 생모였던 영광 김씨는 소실이었다. (양반 가문의 서녀였을 것으로 추정됨-미암일기에 나옴) 허준이 형제들과 달리 어떤 계기로 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나오는 것은 그가 내의원에 들어간 후이다. 그 전의 그의 모습은  유희춘의 미암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569년(선조 2) 유희춘의 얼굴에 생긴 종기를 완치한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유희춘의 신임을 얻었으며, 그로인해 이조판서 홍담(洪曇)에게 내의원에 천거해 주도록 부탁하였으며, 1573년(선조 6)에 정3품 내의원정에 올랐다는 기록하고 있다. (1569년 이후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됨)1575년 어의 안광익과 함께 선조를 진료하기 시작했으며, 1578년 내의원첨정이 되었다. 1590년에는 광해군의 두창(痘瘡)을 치료하여 이듬해 당상관의 반열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선조가 의주로 피난갈 때 어의로서 선조 옆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셨으며, 그 공으로 전쟁이 끝난 후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다. 1596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내의원에 편집국을 설치하고 동의보감을 편집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중단되었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 어의로서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1년 8개월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광해군의 어의로서 일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는 광해군 대에 주로 의서를 편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1610년(광해군 2) 동의보감의 완성하였다. (25권 25책) 동의보감은 그 당시의 의학지식을 거의 망라한 임상의학의 백과전서로, 내경(內景), 외형(外形), 잡병(雜病). 탕액(湯液), 침구(鍼灸) 등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의보감 이후 역병에 관해 저술한 신찬벽온방, 벽역신방을 편찬한 후 1615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정1품 보국숭록대부 작위가 추증되었다.

*미암일기에서 허준 기록 찾기: http://baobabstar.egloos.com/11001262
*역사 속 허준 기록 찾기① http://baobabstar.egloos.com/11006285
*역사 속 허준 기록 찾기② http://baobabstar.egloos.com/11006311
*조선시대 의료기관에 대하여
http://baobabstar.egloos.com/11001450
*의녀제도 http://baobabstar.egloos.com/10942131
*선조의 가계도 http://baobabstar.egloos.com/10990172
*광해군의 가계도 http://baobabstar.egloos.com/1091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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