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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대 철종의 가계도 왕의 가계도-조선

제25대 철종의 가계도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1844년(헌종 10) 형 회평군 명(懷平君 明)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던  전계대원군 셋째 아들을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 하여 왕위를 계승하였다. 당시 19세였으나, 학문과는 걸리가 먼 농부로 생활을 했던 철종은 갑작스럽게 왕이 되었으므로, 처음에는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51년(철종 2) 9월에는 대왕대비의 근친 김문근의 딸을 왕후로 맞이했으며, 김문근이 영은부원군이 된 후 또다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1852년부터 철종은 친정을 시작했지만, 워낙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철종은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이라는 임시 특별기구를 설치하여 민란의 원인이 된 삼정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을 세워 시행하게 하였지만, 뿌리 깊은 세도정치 탓에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했다. 어지럽던 사회정세에서 최제우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빠르게 파급되자, 나라에서는 교주 최제우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죄를 씌워 처형함으로써 탄압하였다.철종은 결국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33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혈육으로는 궁인 범씨 소생의 영혜옹주가 있어 금릉위(錦陵尉) 박영효에게 출가했을 뿐 후사가 없었다.

*세도정치 http://baobabstar.egloos.com/1091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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